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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보다 중요한 건 기다림
부경아동가족상담소 부소장 김문정
상담소에는 가끔 이런 전화가 걸려옵니다.
“아이가 다섯 살인데요, 혹시 지능검사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혹시 어떤 이유로 검사를 원하시나요? 아이 발달에 문제가 있어 보이나요?”
“아뇨, 전혀요. 오히려 너무 빠른 것 같아서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또래보다 조금 더 빨리 말을 하거나, 복잡한 퍼즐을 척척 맞추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부모의 마음속에는 “우리 아이, 혹시 천재 아닐까?” 하는 설렘이 스칩니다. 물론 그 설렘은 오래가진 않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마음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설렘을 단순한 추측에 그치지 않고, 지능검사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려는 부모들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지능검사는 아이의 인지 발달 수준을 객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지적장애나 발달지연, 학습부진 등 인지적 어려움이 의심될 때, 그 정도를 수치로 파악해 조기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합니다. 반대로 평균보다 높은 지적 능력을 보일 때는 영재성 평가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어, 교사와 부모가 아이의 학습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영유아기의 지능은 고정된 수치가 아닙니다. 이 시기의 IQ는 환경적 자극, 부모의 양육 태도, 정서적 안정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크게 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검사 결과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지능검사는 아이의 전반적인 잠재력, 사회성, 정서 능력, 창의성 같은 중요한 요소를 모두 보여주지 못합니다. 인지적 능력만 강조하다 보면, 아이의 전체적인 발달을 놓치기 쉽습니다.
영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발달 과제는 바로 ‘자조능력’ 입니다. 스스로 옷을 입고, 밥을 먹고, 물건을 정리하는 작은 행동들은 단순한 생활기술이 아니라, 자율성과 자신감의 출발점입니다. 자조능력이 발달한 아이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 높고, 새로운 과제에도 주저하지 않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네 살 아이에게 귤을 하나씩 주고 관찰해보면, 아이마다 귤을 까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아이는 손톱으로 껍질을 살살 벗기고, 어떤 아이는 귤 꼭지를 뜯어가며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각자의 이전 경험에서 비롯된 차이입니다. 어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귤 까기조차 아이에게는 하나의 ‘과제’이며, 이를 스스로 해냈을 때 아이는 효능감을 느낍니다. 그 과정에서 귤즙이 손에 묻고 껍질 조각이 손톱 사이에 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불편함조차 아이에게는 감각을 통해 배우는 중요한 경험입니다.
만약 부모가 “지저분하다”, “답답하다”는 이유로 대신 도와준다면, 아이는 그만큼 배울 기회를 잃게 됩니다. 결국 실수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배움의 깊이도 제한됩니다. 부모가 불편함을 감수하며 기다려줄 때, 아이는 비로소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스트레스가 높거나 성격상 기다려주지 못한다면, 아이의 실수를 참아내기 어렵습니다. 실수를 대신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 시도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많이 실수한 아이일수록 더 깊이 배우고, 더 단단해집니다. 그러니 아이가 좌절하거나 짜증을 내더라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성장의 길이랍니다.
부모가 불편함을 감수하며 기다려줄 때, 아이는 비로소 지능검사 결과보다 훨씬 소중한 자율성과 자신감을 자기 속도로 길러갈 수 있습니다. 아이의 발달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이루어집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잠재력을 앞서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내는 경험 속에서 자율성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기다려줄 때, 아이는 비로소 자기 속도로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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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정 부소장님 |
- 부경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졸업
- 대구대학교 상담학과 박사과정 중
- 부경대학교 아동상담과 강사
- 남구 보육정책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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