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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부모도 기분좋은 원칙 연결 육아 ③>
김수려
M세대 부모들의 양육 멘터 닥터 베키의 “훈육 중심에서 연결 중심으로 바꾸는 양육 전략”을 다룬 책 <연결 육아>에 나온 양육의 원칙 중 몇 가지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너무 늦지 않았다>
1. “너무 늦지 않았나요?”라는 질문 앞에서
부모 교육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이미 다 커버렸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까요?”, 세 살배기 아이부터 열여섯 살 사춘기 자녀, 심지어 성인이 된 아이를 둔 부모까지 모두 비슷한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베키 케네디는 《연결육아》에서 이렇게 단호하게 답합니다.
“아닙니다.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늦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이의 성장뿐 아니라 부모 자신의 회복과 변화 역시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 뇌는 평생 바뀔 수 있다 ― 신경가소성의 힘
우리가 ‘이미 늦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성격이나 관계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경과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간의 두뇌는 태어날 때부터 성장 과정에서 회로를 형성하지만, 동시에 평생 새로운 회로를 만들고 재배치할 수 있는 능력(신경가소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부모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자녀와의 관계를 새롭게 맺으려는 순간부터 뇌는 이미 새로운 학습을 시작합니다. 아이의 감정조절, 공감, 관계 형성을 담당하는 중앙 전전두피질은 양육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랍니다.
그러나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되었다 해도 그것이 ‘운명’은 아닙니다. 심리학자 루이스 코졸리노는 치료자와 내담자의 안정 애착 관계가 감정조절 회로를 재조직한다는 사실을 밝혔고, 신경과학자 메리앤 다이아몬드는 풍부한 자극이 뇌의 성장과 연결망을 강화한다고 입증했습니다.
결국 부모의 변화가 곧 아이의 뇌 변화를 이끕니다. 부모가 감정을 성숙하게 다루고, 자신을 성찰하고, 관계 회복을 시도할 때, 아이는 정서적 안정과 자기조절력을 배우게 됩니다. “내가 변하면 아이도 변한다.” 이 단순한 진리가 신경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셈입니다.
3. 회복은 ‘다시 연결하려는 용기’
여기서 말하는 회복(Repair)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핵심은 단 하나, 감정의 단절 이후 다시 연결하려는 태도입니다. 누구나 통제력을 잃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그 순간을 부정하거나 피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 차분하고 연민 어린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것이 바로 회복의 시작입니다.
“좋은 부모는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다시 연결할 줄 아는 부모다.”
이 한 문장이 《연결육아》 전체의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습니다.
4. 몸의 기억을 다시 쓰는 일
우리의 몸은 감정을 기억합니다. 아이가 부모의 분노나 무관심을 경험하면, 뇌와 몸은 ‘나는 혼자야’, ‘나는 나쁜 아이야’라는 정서적 꼬리표를 남깁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기억은 다시 쓸 수 있습니다. 감정이 폭발했던 장면을 되돌아보며 지지와 이해의 경험을 덧입히면, 아이의 신체 기억은 “나는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감정으로 재구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뇌는 실제로 새로운 신경회로를 형성합니다. 비판 후의 지지, 소리 후의 어루만짐, 오해 후의 이해. 이런 경험이 반복될 때, 아이의 마음속에 ‘나는 안전하다’는 회복의 감각이 쌓입니다. 이것이 바로 케네디가 말하는 “몸이 기억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5. 회복의 네 단계
저자는 부모가 따라 할 수 있는 회복의 4단계 대화법을 제안합니다.
① 사과하기
– “엄마가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어. 그건 엄마의 감정이야.”
② 기억 공유하기
– “그때 무서웠지? 그래도 엄마는 널 여전히 사랑했어.”
③ 성찰 보여주기
– “그때 다르게 대했으면 좋았을 거야. 다음엔 더 잘해볼게.”
④ 책임 명확히 하기
– “엄마가 소리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감정을 다스리는 건 엄마의 일이야.”
이 대화는 아이가 “나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야”라고 느끼게 하며,
부모에게는 “나는 여전히 성장 중인 어른”이라는 자기 확신을 회복시킵니다.
6. 부모의 모델링 ― 아이는 ‘회복’을 배운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태도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부모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연결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 역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습득합니다. 즉, 회복은 단순한 관계 복원이 아니라, 정서적 모델링의 과정입니다. 부모가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계속 배우고 있어”라고 말할 때, 아이에게는 “나도 실수해도 괜찮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해집니다.
7. 회복에는 시간 제한이 없다
회복은 즉시 일어나지 않아도 됩니다. 10분 후, 10일 후, 심지어 10년 후에도 가능합니다. 부모가 진심으로 아이에게 돌아가는 순간, 관계의 이야기는 새롭게 쓰입니다. 그 순간 아이의 뇌는 다시 연결되고, 마음의 상처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점차 누그러집니다. SNS에서 한 어머니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아홉 살 된 딸에게 말했어요. ‘그때 너에게 타임아웃을 줬던 건 엄마가 잘못했어. 그 시절 네가 나를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이었는데, 미안해.’ 아이의 어깨가 풀리는 걸 봤어요. 우리는 울며 서로를 꼭 안았죠.”
또 다른 부모는 성인이 된 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때 고함을 질렀던 나로 인해 너의 마음이 얼마나 안 좋았을지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어.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하고 싶어.” 이 말에 딸은 울었고, 그 짧은 통화가 부모와 자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이렇듯 회복은 세월을 건너도 유효합니다. 사랑과 진심은 관계의 시간표를 무력화시킵니다.
8. 완벽보다 회복
견고한 관계는 갈등이 없어서 견고한 것이 아닙니다. 의견이 부딪히고, 오해가 쌓여도 다시 연결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진짜 단단해집니다. 부모의 완벽함은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수 후 다시 연결하는 경험이 아이에게 ‘신뢰의 내성’을 길러줍니다. 좋은 부모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좋은 부모는 회복하는 부모입니다.
부모로 산다는 건 완벽을 향한 여정이 아닙니다. 매일 조금씩 회복을 배우는 길, 그것이 진짜 양육의 여정입니다. 오늘 하루 아이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봅시다. “괜찮아,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어.” 이 말 한마디가 상처를 감싸고, 관계를 다시 숨 쉬게 합니다.
늦은 때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 가족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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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려 소장님 |
- 경성대학교 교육학과 박사 졸업
- 전) 영도중앙어린이집 원장
- 현) 브레인맘 연구소 소장
- 현) 신라대학교 미래융합학과 복지상담트랙 초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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