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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그린 그림, 아이는 왜 값을 낮췄을까
덕성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김혜영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어떤 아이는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꽤 멋진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잠시 후 연구자가 한마디를 건넸다. "이거 사실 인공지능이 그린 거야." 같은 그림을 다시 마주한 아이는 이번엔 값을 낮춰 불렀다. 그림값이 천 원쯤 될 것 같다고.
이 장면은 실제 연구 결과의 한 대목이다. 연구팀은 4~5세 유아 29명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A집단에게는 처음부터 이 그림들이 인공지능의 작품이라 알려주었고, B집단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같은 미술 작품 5점을 감상하며 호감, 감정이입, 작품 의도, 작품 가치라는 네 가지 기준으로 점수를 매겼다. 이후 창작자가 인공지능임을 모르는 상태였던 B집단에게만 뒤늦게 그 사실을 알리고, 같은 그림을 다시 평가하게 했다.
첫 번째 결과부터 보면, 전체적으로 아이들은 ‘누가 그렸는가’보다 ‘무엇이 보이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창작자가 인공지능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본 아이들과 모르고 본 아이들 사이에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림의 분위기나 등장인물을 눈여겨보았을 뿐, 창작자의 정체는 아직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아이들의 마음이 흔들린 것은 두 번째 결과였다. 인공지능이 그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B집단 아이들의 점수는 특히 작품의 ‘의도’와 ‘가치’를 묻는 항목에서 눈에 띄게 낮아졌다. 방금 전까지 정성이 담겼다고 여겼던 그림에서, 아이들은 이제 정성 그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좋고 싫음이라는 즉각적인 감정 표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림이 지닌 의미와 값어치를 가늠하는 기준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처럼 아이들이 AI 작품의 가치를 낮게 평가한 현상을 연구진은 심리학 개념인 '노력 휴리스틱(effort heuristic)'으로 설명한다. 노력 휴리스틱이란, 사람이 어떤 결과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때 실제 완성도보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을까'를 은연중에 판단 잣대로 삼는 경향을 말한다. 오래 매달려 만든 작업일수록 더 가치 있게 느껴지고, 순식간에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결과물은 품질과 무관하게 저평가된다. 본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어 온 이 판단의 저울이, 어린이의 미술 감상에서도 이미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인공지능이 그렸다고 믿을 때, 많은 아이들이 그 그림이 고민 없이 순식간에 만들어졌으리라 짐작했고, 이는 곧 작품 가치를 깎아내리는 근거가 되었다. 반대로 사람이 그렸다고 믿을 때는 옷 입은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옮겨 그렸다거나 꽃 모양을 오래 고민했을 거라며 노력의 흔적을 찾아내려 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인공지능이 그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둘 다 소중해요 모두 똑같아요"라고 답한 아이도 있었다. 노력 휴리스틱은 다섯 살 아이들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법칙이라기보다, 어떤 아이에게는 강하게, 어떤 아이에게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저울에 가깝다. 또한 이 연구는 소규모 표본을 대상으로 한 탐색적 연구였던 만큼, 같은 그림을 두 번 보는 과정에서 생긴 단순한 지루함이 점수 하락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교육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이는 작품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정보와 그 정보가 주어지는 시점이 아이의 판단을 크게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작가를 알고 본 아이들의 반응은 모르고 본 아이들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정작 마음이 흔들린 순간은 이미 형성된 인상 위에 뒤늦게 진실이 얹어졌을 때였다.
이는 부모와 교사에게 실용적인 질문 하나를 남긴다. 아이에게 인공지능이 만든 그림이나 이야기를 보여줄 때, '무엇을 보여줄지' 못지않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 사실을 알려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상을 마친 뒤 정보를 건네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느낌이 어떻게 달라졌니?" 하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에 의해 움직였는지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아이에게 자신의 판단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라는 뜻은 아니다. "AI라는 말을 듣고 나니 왠지 천 원 같아졌다", 혹은 "AI로 그린 그림도 여전히 멋져"처럼, 마음이 달라지는 순간을 입 밖에 내어보는 경험 그 자체가 필요한 것이다. 교사와 부모가 서둘러 "AI 그림도 소중한 거야"라거나 "역시 사람이 그린 게 낫지"라며 결론을 내려주기보다, 아이의 생각을 여유 있게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생각의 이유를 스스로 발견하고 표현하는 경험 자체가 아이에게는 더욱 귀중한 교육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이 외부 정보에 의해 어떻게 움직였는지 되짚어보는 이 경험이야말로, 정보의 출처와 맥락을 스스로 따져보는 힘, 즉 이 시대에 필요한 'AI 리터러시'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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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영 강사님 |
덕성여자대학교 유아교육 박사
현) 덕성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인공지능과 유아 관련 연구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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