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다그치기 전에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임상심리사 정지영
상담을 위해 와서 상담자와 마주앉게 되는 사람을 내담자라고 한다. 내담자께서 상담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을 두드리는 그 소리에는 그 내담자의 인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주 앉은 내담자가 자신이 이 곳에 오게 된 이유를 꺼내는 것 또한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어떤 내담자들은 마주앉아 말을 꺼내기 힘들어할 정도로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침묵을 한다. 혹은 열변을 토하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담담한 어조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주신다. 내담자마다 가지고 온 이유는 하나같은 것이 없지만 그것을 가만히 들어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는 듯하다. 내 마음이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가만히 들어보면 나의 그 힘든 마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것을 알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떨 때는 내가 그 힘든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실에 아이의 문제행동으로 오는 어머니들도 만나는데 그 중 특히 생각나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다. ‘아이가 내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어요’ 네, 어떤 말을 잘 들었으면 좋을 것 같으세요? 내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군요. 자녀가 내가 바라는 대로 공부를 잘한다면 참 좋지요. 공부가 어머니에게 그만큼 중요한 것인가 보군요. 그런데 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어느 정도일까요? 하며 아이가 하루에 하는 학습과제를 살펴본 결과 학습지와 문제집이 10권정도 되었다. 물론 매권마다 하는 학습량은 1~3쪽 정도라고 하지만 그 학습량을 매일 매일 풀어내야 하는 미취학연령의 아이가 가지는 압박감은 그림검사를 통해 확인했을 때 상당해보였다. 그 어머니가 상담을 통해 다루어지길 원하는 또 하나의 바램은 그 학습과제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지금처럼 투정이나 떼쓰기의 행동을 하지 않고 더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며 기꺼이 해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로서 자녀에 대한 기대, 욕심은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학업성취의 가치관이 높은 사회에 살면서 자녀가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수행의 습관과 성공경험을 요구하는 마음은 부모라면 대부분 가질 것이고 각자의 가치관과 선호에 따라 꼭 학업영역에서의 성취가 아니더라도 자녀가 달성했으면 하고 바라고 조성하는 영역들의 성취행동들이 가정마다 있을 것이다.
아이가 내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다는 호소를 하시는 또 다른 어머니가 있었다. 그 어머니는 훈육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가지고 오셨는데 아이가 너무 자기 말을 안듣는다며 뭘 하지 마라고 했을 때 아이가 즉시 딱! 중단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집집마다 아이의 훈육을 하게되면서 부모자녀간 갈등이 더욱 첨예하게 발생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회성 증진, 집단생활에 적응을 위한 정서와 행동조절의 목적인 훈육은 요즘 같은 사회에 더욱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자녀의 성장을 위한 훈육을 하는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자녀가 해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요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가늠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가늠이 과연 정확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다. 내 마음이 니 마음과 같고, 니 마음이 내 마음과 같은.. ‘우리가 남이가?!’ 의 정신은 우리에게 유전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우리가 누군가와 친밀해지고, 내 인생의 반쪽을 결국 찾아냈다는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고 결혼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부부관계에서도 그러한 것 같다. 내 마음을 정말 딱 맞게 알아차려주고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는 눈빛이 오가게 되며 각자는 상대방이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귀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줄 몰랐던 전쟁같은 갈등관계를 지난 후에 혹은 여전히 치르고 있는 중이라도 곱씹어 생각해보면 알아주고 채워주고 있다는 내가 사랑하던 애인의 그 행동으로 우리가 서로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연애할 때는 내가 뭘 먹고 싶은지, 어디서 데이트 하고 싶은지를 알아서 리드해주는 든든한 상대방의 이끌어주는 행동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독단적이고 지 밖에 모르는 행동밖에 안해서 도저히 너랑은 말이 안 통하니 너 때문에 결혼생활이 파탄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배우자가 되는 것이다.
관계에서는 너와 내가 있다. 나는 너가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너도 내가 있기에 너로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너란 존재에게 무엇을 왜 원하게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왜 너에게 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면 그 너에게 원하는 것들이 내가 왜 원하게 되는 것인가?에 대해 머물러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생존을 하려면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관계욕구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음식의 제공, 안락하고 쾌적한 환경뿐 아니라 신체의 접촉에서 오는 느낌의 것들을 우리는 관계를 통해 제공받게 되고 이를 애착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애착관계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는 ‘자기self'를 만들어가게 된다. 상호작용에서 너로부터 받는 경험들, 말들, 정서적 느낌들이 나에게 내면화(internalization)되어 내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고 나의 것들이 너에게 닿여 또 너가 되며 나에게 와닿게 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 자리잡게 되는 너의 존재, 목소리, 느낌들은 나의 것이 되면서 나의 바램과 욕구가 되어지지만 그것이 나의 것인지, 너의 것인지에 대해 인식할 겨를없이 욕구에 따른 추구행동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경계의 인식에 어려움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일수록 더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지금 나의 배우자에게, 나의 자녀에게, 나의 친밀한 누군가에게, 아니면 그냥 지나쳐가도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기원은 아마 나의 인생에 중요한 너였던 나의 부모로부터 반복적으로 주어졌던 상호작용에서 발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어떤 요구를 받아왔던가?를 떠올려보며 내가 받은 것과 내가 하고 있는 것 그 둘 간의 연결성이 느껴보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나를 내가 알아주고 사랑해주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상심리사 정지영 |
-부산대학교 아동학 박사 수료
-임상심리사 1급
-부산광역시육아종합지원센터 육아플래너
-부산광역시아동보호종합센터 놀이치료사
-동래구가족센터 전문상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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